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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6】[나를 키운 8할은] 송일국 "배우의 길...

[나를 키운 8할은] 송일국 "배우의 길, 연기의 길 열어준 선배님들"
등록 : 2017.08.26 04:40
수정 : 2017.08.29 00:53



내 인생의 절반은 내 것이 아니다. 방향을 제시하고 조정하며 지켜봐 주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난달 막을 내린 연극 ‘대학살의 신’을 통해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됐다. ‘대학살의 신’은 만만치 않은 연극이었다. 우선 배우들부터 쟁쟁했다. 대한민국 공연계를 이끄는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선배들 틈에서 연기해야 했다. 아이들의 다툼이 그 부모들의 싸움으로 커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연극은 배우 4명이 연기로만 만들어가는 무대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벌어지는 건 당연했다. 주ㆍ조연 구분없이 네 명이 무대 위에서 진검 승부를 해야 했다. 내가 맡은 미셸 역은 50대의 뚱뚱한 아저씨였던 원작의 캐릭터를 180도 바꿔 이지하 선배의 연하 남편으로 재탄생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쫑파티’에서 소고기를 먹었을까. 연극계 회식에서 비싼 소고기는 금지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연극은 나를 배우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내 인생의 첫 연극 ‘나는 너다’(2010)로 윤석화 선배님을 만나면서 새 생명을 얻었다. 데뷔 이후 줄곧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얻으면서 ‘겉멋’만 잔뜩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너다’ 직전 출연했던 MBC드라마 ‘신이라 부르는 사나이’(2010)는 연기보다 몸의 근육을 키워 신체를 강조했던 작품이었다.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오로지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했다. 바람이 들어갈 데로 들어간 내가 연극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윤 선배님 보기에 얼마나 기가 찼을까.

더군다나 ‘나는 너다’에서 1인2역을 연기했다. 안중근 의사와 그의 아들 안준생을 동시에 펼쳐내야 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무대 경험이 전무한 송일국이 1인2역이라니. 아니나다를까 연습부터 엉망이었다. 무대에서 걷는 데 손발이 같이 움직였다. 어디를 보고 서야 하는지도 몰랐던 시절이다.

당시 연출을 맡은 분이 윤 선배님이다. 무대 초년생인 내게 서있는 자세부터, 한 발짝씩 움직이는 발의 각도, 손의 움직임, 목소리 톤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일일이 알려주셨다. ‘나는 너다’에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의 박정자 선생님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알 만하다. 완벽주의자인 윤 선배님은 남들이 하는 10년치 공부를 단번에 가르쳐줬다. 배우 출신 연출가라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윤 선배님이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연극은 재공연을 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외증조부 김좌진 장군의 후손인 내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촉매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안준생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런 연기를 끌어내 준 분이 윤 선배님이라 감회가 새롭다.

두 번째 무대였던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2016)도 사연이 남다르다. 무대 연출가인 줄리안 마쉬 역할은 무대에선 ‘중고 신인’인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뮤지컬이 너무 하고 싶었지만 처음인데다 화려한 노래와 춤 실력이 마땅치 않았다. 연기 노래 춤, 3박자가 완벽한 배우들이 할 수 있는 꿈의 무대가 아닌가.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최정원 선배님 덕분에 캐스팅 될 수 있었다. ‘나는 너다’로 연극 신고식을 마친 나를 흡족한 기분으로 보셨던 거다. 이렇게 기쁠 때가 또 어디 있을까. 매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외증조부의 업적은 후손인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요샌 ‘조상 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내도 최근에 “당신은 하늘에서 커리큘럼을 짜주는 것 같다”고 말한 정도다. 그러한 기운이 좋은 안내자를 만나는 ‘복’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사실 학창시절에는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타이틀이 마냥 좋진 않았다.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조상들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 “(호적에)빨간 줄 하나 가지 않게 행동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왔다. 혈기 넘치는 젊은이에게 이런 말들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어느 한 곳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20대는 ‘찌질의 역사’라 지우고 싶다.

대학을 다니다 어머니의 운전기사 노릇을 할 때였다. KBS 사극 ‘용의 눈물’ 촬영 때 뵈었던 유동근 선배님은 내게 다짜고짜 “젊은 애가 왜 이러고 있느냐”며 “연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 이후 유 선배님을 멘토처럼 여기며 모든 일을 상의했다. 제의가 들어온 드라마와 배역에 대해 논의했다.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 슈퍼맨이 돌아왔다’ 섭외 요청이 들어왔을 때도 유 선배님을 찾았다. 선배님은 “해봐. 너의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고, 예능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주셨다.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배우의 길은 유동근 선배님이, 연기의 길은 윤석화 선배님이 열어 주신 거라고.

선배님과의 인연은 2004년 시청률 30%를 넘었던 KBS드라마 ‘해신’에서도 이어졌다. 염장이라는 악역을 맡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 잊을 수 없다. 그 은공은 채시라 선배님께 돌리는 게 맞다. 당시 나는 KBS 사극 ‘이순신’에서 이순신 역에 도전하기 위해 승마와 국궁, 무술 등을 연마했다. 그러나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꽤나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해신’ 제작진에게 받은 전화 한 통은 내게 대단한 보약이었다. KBS 드라마 ‘애정의 조건’에서 호흡을 맞췄던 채 선배가 나를 염장 역에 추천한 모양이었다.

무작정 중국으로 건너갔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면 못할 게 없었다. 결의에 찬 마음도 잠시, ‘해신’은 첫 장면부터 난관이었다. 광활한 평야를 말 타고 달리다 뒤를 돌아보는, 고난도 연기였다. ‘이순신’을 위해 배워둔 모든 기술을 총동원했다. 이 장면은 ‘해신’의 마지막 장면으로 쓰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시청자들을 TV 앞에 모이게 했다.

알다시피 나는 늦깎이 배우다. 27세의 나이에 MBC 공채(1998년) 탤런트로 데뷔했고, 2006년 MBC 드라마 ‘주몽’에서 주인공을 하기 전까지 무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배우로서 잘 가고 있는지 혹은 내 연기가 올바른 것인지 주춤할 땐 선배님들을 그려보곤 한다. 그 시절을 채워준 건 나의 영원한 스승, 아늑한 선배들의 품이었다.

<배우 송일국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리=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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